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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 봐요! ① 고라니

입력 : 2016-01-12 1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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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으로 슬픈 이 시대 우리들의 자화상 고라니



▲파주 타이포그래피 스승 일러스트레이터 권민호

 

연구소를 설립하고 첫 서부 DMZ일원 생태조사를 할 때였다. 저녁이 되어 조사를 마치고 한적한 숲길을 지나는데 올무에 걸린 듯한 짐승의 외마디 비명소리를 들었다.

 

웨에엑~, 웨에엑~하는 절규하듯 내는 소리음은 두려움과 안스러움이 동시에 느끼도록 하는 참 괴이한 파장이었다. 그 뒤로 소리의 정체를 알기 위해 많은 시간 동안 관찰한 결과 그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고라니였다. 낮에 만난 고라니는 순진한 눈망울과 겁이 많아서 쉽게 도망치는 초식동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고라니가 어떻게 그렇게 기이한 소리를 내는지... 아직도 잊지 못할 전율을 느끼게 하는 소리다.

 

고라니는 흔히 노루와 비슷하여 생태 체험 참가자들은 아직도 고라니를 노루, 혹은 사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라니는 사슴과에 속하는 동물로, 보노루·복작노루라고도 한다.

 

학명 ‘Hydropotes(물을 먹는 놈) inermis(무기를 가지지 않은)’은 ‘물가에 사는 무기(뿔)를 가지지 않은 사슴’이란 뜻으로 공통적으로 물과 관련이 있다. 이 동물이 처음으로 세계의 학계에 소개된 것은 1870년 서양의 학자 스윈호(Swinho)가 중국의 양자강가에서 발견하고 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고라니는 유난히 물가를 좋아한다. 헤엄을 잘 치며 보금자리도 물가 풀숲에 잘 튼다. DMZ에 있는 사천강, 사미천과 임진강, 역곡천 등지에서 헤엄치며 물속 식물들을 먹는 평화스런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고라니를 워터디어(Water Deer) 즉 물사슴이라 부르는데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현재 남한의 내륙지방에서 노루는 거의 발견되는 것은 없고 대부분은 고라니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사슴과 중 유일하게 뿔 대신 송곳니를 가졌고 유두가 4개다. 한마디로 진화가 덜 진행된 고대형(古代型) 동물이다. 고라니는 진화상 고대형 소형 사슴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양자강 남북 일대에 각각 하나의 아종(亞種)이 있다.

 

즉, 전 세계에서 한반도와 중국에만 사는 이 지역 고유종이다. 초식만 하고 다른 동물을 지배하거나 공격하지 않는 온순한 동물이지만 수백만년동안 한반도 생태계를 지켜온 한반도 생태계의 최후 생존자 또는 최후 승리자인 동물이다.

 

고라니는 적이 나타나면 감연히 일어서 주의를 자신에게로 이끌어가며 빠른 걸음으로 따돌린다. 그런데 1분 정도 전력 질주 하다가 일단 멈추고 사방을 다시 살핀 다음 추적자가 없을 경우 다시 그 위치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왜 자신이 도망쳤는지 모든 걸 잊고 다시 먹이 활동을 하는데 이 때가 고라니에겐 가장 위험한 순간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나는 11년째 서부민통선에서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 난 늘 귀를 쫑긋하고 산다. 남북관계가 복잡해지거나 군 관련문제가 발생하면 나는 막연한 두려움에 자기검열을 한다.

 

내가 다닌 길이 혹시 군 관련하여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아니었는지, 내가 찍은 생태사진 속에 혹시 군 관련 준수사상을 어기지나 않았는지, 내가 표현한 문장에 혹시 소위 문제의 글은 없는지 소심하고 두려움에 가득해서 나를 검열한다. 나는 고라니와 닮았다.

 

 

김승호

DMZ생태연구소장 ┃ DMZ포럼위원 ┃ 코리아DMZ공동대표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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